철학상점

이상의 탄생, 플라톤

우주먼지96호 2021. 12. 7. 09:22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한 각주에 불과하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말했다. 교과서 속에 자리한 그 수많은 명석한 철학자들의 사유들이 모두 플라톤에 대한 왈가왈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서양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사상 지평에 기본적으로 플라톤이 기저 한 것은 사실이다.

 

철학이 흔히 받는 오해가 기껏 해봐야 일종의 말장난이자 탁상공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공학이나 화학 같은 실용학문보다 더 실생활에 근접한 것 같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 "현재의 사회제도(민주주의)의 근간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냐"라는 문제를 풀었던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난 "플라톤"이라고 대답했었는데, 당시 선생님은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한 엘리트 주의자라서 민주주의와는 반대되는 인물이라고 했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고 플라톤 본인도 당시의 민주주의를 싫어했지만, 근본적으로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인권' 상정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민주정은 플라톤 철학에 기대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늘에서 (이유 없이) 부여받은 어떤 선하고 좋은 원형'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고대 그리스의 이원론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이라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이 처럼 2400년 전에 생동했던 철학이 현재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정도면 철학이 말장난이라고 불리는 건 억울한 일이 아닐까?

 

다들 잘 알다시피 그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고대철학 삼총사의 둘째로, 기원전 427년경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스승인 소크라테스와는 다르게 태생부터 귀족이었다. 아버지 아리스톤(Ariston)은 당시 전설적인 왕 코드 로스(Codros)의 자손이고, 어머니 페리크 티오네(Perictione)는 그리스 7현인 가운데 하나인 솔론(Solon)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귀한 집 자식인 그가 어쩌다가 거리의 낭인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20살 무렵부터 그는 스승의 영향으로 철학에 입문하게 됐다. 원래 플라톤은 철학보다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저작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3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쓴 원동력일 수도 있겠다. 여담이지만 플라톤은 귀족 집안 출신에 레슬링 선수였고, 글도 잘 쓰고 얼굴도 미남인 엄친아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분명히 스승의 철학을 계승했지만, 문답을 통한 교육에 집중하고 그 논의가 알 수 없음(aporia)에서 멈췄던 스승과는 달리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구축했다. 앞선 소크라테스 편에서 그가 처형당한 이유가 당시 주류 철학이나 정치세력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했었는데, 여기서 주류 철학이라 함은 유물론이었고, 정치세력이라 함은 민주정이었다. 플라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대에 대표적인 유물론자였던 데모크리토스(Dēmokritos)에 맞서 그 유명한 이데아(Idea) 론을 제창했다. 객관적 관념의 세상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비물질적, 영원, 초세계적인 절대적 참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세계영혼이며, 인간의 영혼은 세계영혼이 주재하는 이데아계에 있던 것으로, 이 영혼은 불멸(不滅)이며 이데아를 상기하는 것에서 진정한 인식이 얻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은 이데아계의 열화 복제라고 생각했다. 감각적 인식은 단순한 '억견'(doxa)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지적인 인식이 진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진짜 인식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사과를 보고 그것이 사과인 것을 아는 이유는 완벽한 '사과' 즉, 사과의 이데아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뭐랄까, 사과를 이루는 변치 않는 속성들의 총체적 원류라고 할까. 그리고 그 이데아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며, 조금씩 조금씩 상기하기 때문에 사과가 사과인 것을 안다는 것이다. 영혼의 불멸과 상기(上記),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국가론』 에서 동굴의 비유를 든다.

 

 

출처 https://blog.naver.com/hamiyatoon/221478449867

 

동굴에서 벽면을 보고 묶여있는 죄수들. 그리고 그 죄수들 뒤로는 횃불이 놓여있다. 횃불 앞으로는 담이 있고, 일련의 물체들이 왔다 갔다 한다. 죄수들은 벽면에 비친 물체들의 그림자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수들은 동굴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림자가 이 세상의 전부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동굴 밖으로 나가 진짜 세계를 보게 된다. 처음에는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윽고 바깥세상에 적응한 그는 동굴로 돌아와 죄수들을 풀어준다. 그러고 말한다.

 "야, 이거는 가짜야. 바깥에 진짜 세상이 있어!"

그러나 죄수들은 그를 비웃는다. 묶여있지 않음에도 동굴을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미쳤군. 이것을 봐! 이렇게 생생하게 물체들이 움직이는데, 이게 어떻게 가짜야?"

 

이것이 그 유명한 동굴의 우화이다. 물론 죄수들은 감각적 인식을 믿는 사람들이고, 그림자는 물적 세계이다. 그리고 바깥의 진짜 세상은 이데아의 세계인 것이다. 감각을 넘어서, 이성으로만 보이는 진짜 세계. 자, 처음으로 돌아가서, 화이트헤드가 서양의 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양의 사상 전반에 감각은 왜곡이고, 이성은 진실이라는 무언의 합의가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물질) 외에 그 어떤 형이상학적인 '좋은 것(이성)'이 있다는 거대한 전제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깨부순 것이 후일의 니체였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 이데아의 세계로 근접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지적인 깨달음의 기쁨을 말한 것일까? 철학자의 역할은 바로 사람들을 이 깨달음의 기쁨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의 철학은 필연적으로 엘리트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동굴의 우화만 봐도, 누군가는 묶여있는 죄수들을 풀어주고 밖으로 나가자고 설득해야 한다. 묶여있는 사람들끼리 갑자기 "우리, 밖으로 나가는 안건에 대해 투표해볼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가 철인정치(엘리트 계급주의)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태생이 귀족 출신이었기도 하고(당시 아테네의 정치 형태는 민주세력 vs 귀족세력 비슷한 구도였다), 사랑하는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에 의해 부당한 죽음을 당하는 것도 직접 목격했으니까 말이다. 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리고 사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국가의 이상적인 형태라는 거지 진짜 현실적으로 당장 그렇게 통치를 하자는 말은 아니었다.

 

또한, 엘리트주의라는 어감이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와는 다르게, 플라톤의 철인은 사실상 인간성이 거의 말살당한 철학 기계이자 통치 기계에 가깝다. 사유재산과 결혼을 금지당하고, 한평생 자부심과 의무감(..)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사람들인 것이다. (또, 그가 꿈꾼 이상국가는 계급사회이지 신분사회는 아니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일단 사람이 태어나면 모두 탁아소 같은 데서 공동으로 교육되고, 교육 과정에서 능력에 따라 계급이 결정된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이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일단, 기계적으로나마 공정의 극단이라고 볼 수 있겠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아테네를 떠나 메가라(Megara),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며 종파를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사상을 접했다. 아마 이 시기에 『대화』편들이 집필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흔 살이 지나 고향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Acadēmeia)를 세워 청년들을 가르쳤다. 플라톤 아카데미라고 불린 이 학교는 6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기원전 366년과 361년경 시칠리아 시라쿠사로 가서 그곳의 참주 디오니시오스 2세(Dionysios II)를 대상으로 자신의 정치사상을 펼쳐보려고 했는데, '단 한 명을 교육하는 것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실패했으며, 이후 그는 반역자 혐의를 받아서 시칠리아에서 죽을 뻔한다. (참고로 플라톤은 이 외에도 시라쿠사에서 자신의 정치사상을 펼칠 기회가 2번 더 있었는데, 총 3번 실패했고, 2번 죽을 뻔했다. 세상살이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고국으로 돌아온 플라톤은 자신이 세운 학교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다가 80세에 생을 마감한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플라톤의 사상이 뭐가 그렇게 특별해서 추앙받는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사상에 코웃음 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에게? 그게 다야? 철학도 별 것 없네?"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이데아? 그런 걸 왜 믿어? 없는걸 어떻게 믿어?"라고 한껏 유물론적인 시니컬 콘셉트를 추구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의 (사회적) 양식도, 화폐의 가치도, 국가라는 실체도, 인권이라는 특권도 모두 '없는 것'을 있다고 상정한 것이다. 형이상의 무언가를 상정하지 않으면 사회란 것은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

 

플라톤 시대에는 '정치' '철학'을 접목했다는 것 자체도 충분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플라톤의 이전에 철학은 실생활과는 진짜 별로 상관이 없는, 일종의 지적 모험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못했었다. 소크라테스 역시도 구체적으로 정치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않(혹은 못)았다. 그러나 플라톤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실재적인 생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한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바라볼 때는 부감(俯瞰) 해야 한다. 지금 시대의 시선으로 그때를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흘렀던 문명과 인간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봤을 때, 플라톤의 입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공정한 경쟁과 능력에 따른 역할 분배, 남녀평등(집 지키는 개가 숫캐인지 암캐인지 뭐가 중요하냐는 괄괄한 말투로)이라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과제를 기원전에 제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대단하지 않은가? 

 

탐탁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은 서구적인 정신문화가 세계를 제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옷, 문화, 제도와 사상 모든 것이 그들의 것인 건 사실이다. 때문에 플라톤을 읽는다는 건 지금 현재를 읽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의 교육제도에서 플라톤을 위시한 인문학의 입지처럼 뒷방 늙은이 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되지 않을까? 교육에 대한 플라톤의 말 한마디를 소개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교육이 한 인간을 양성하기 시작할 때의 방향이 훗날 그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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